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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거저리들과의 어색한 동거

가로쥐가 죽은 뒤 세로쥐와의 동거를 이어나가고 있다. 세로쥐는 나를 불편해 하기 때문에 그동안 가로쥐가 우리의 가교가 되어 주었다. 현재상황은 흡사 엄마가 나가버린 집에서 엄격한 부친과 자식이 어색하게 겸상하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그런데 더 어색한 관계가 생겨버렸다. 가로쥐 임종 전 구입한 밀웜을 세로쥐 주려고 열마리 남겨놓고 당근으로 팔아버렸는데 급여를 미루고 있었더니(세로쥐가 비만이라 고열량 식품 웬만해선 안 줌) 다섯 마리가 우화해 버렸다. 어쩔 도리가 없어 기르는 중인데 크게 애착이 가진 않는다. 이들의 특기는 뒤집어져서 버둥거리기인데 그걸 봐버렸더니 웃겨서 방생하기도 그렇다. 저 정도의 둔함이라면 방생즉시 무언가의 먹이가 될듯. 원래 먹이이긴 했지만.. 다행히 수명이 50-160일이라니까 (평..

2021.09.28

회색지대

맑은날 여의도 공원 잔디밭에 엎드려 독서를 시도한 적이 있다. 하얀 종이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고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주위가 어두워졌을때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왼쪽이던 오른쪽이던 사상적으로 크게 치우친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보면 동의가 되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가슴 깊은 곳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현상을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보고있구나. 라는 느낌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는 행위는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다들 아다리가 맞고 답이 나오는 걸 좋아하니까.. 당장 나부터도 몇몇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사고를 관둔 듯한 면이 있고 논문을 자주쓰던 a가 한말 중 ..

2021.09.05

마루야마 겐지와 취집

A Eng NS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집 '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 를 읽고있다. 이 아저씨 너무 직진만 한다. 그래서 아주 재밌다. 성장기때 읽었으면 상당히 경도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좀 걸러서 읽게된다. 어쨌든 개인의 주관이니까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의존성을 버리고 자립하라! 이다. 그리고 자립을 위해 부모, 국가, 종교를 버리고 회사를 때려친 뒤 자영업자가 되어 삶과 치열하게 맞서라고 겐지는 설파한다. 부모의 그늘에서 사는 건 진정한 인생이 아니니 가출하라는 대목을 읽다가 작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요양 겸 해서 당시 만나던 A의 집으로 내려가 한달동안 살았는데, 대충 이런 일과가 반복되었다. 9-11시 사이에 A가 살금살금 일어나 출근 나는 3-4시쯤 일어나서 침대에서 폰질 ..

2021.08.18

팝스쿼드. 번식자들

넷플 러브데스로봇 시즌2가 나왔다. 사실 나온지 쫌 됐는데 개노잼이라 그런지 리뷰가 별로 없네 그래도 세번째 에피소드는 기억에 남는다. 미래의 지구가 배경이고 이 시대 지구인들은 팝스쿼드라는 약물을 주기적으로 주입해 영원한 젊음을 누리며 삼. 그리고 사람이 안 죽으면 인구를 조절해야 되니까 번식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팝스쿼드까지 포기하고 숨어 살며 꾸역꾸역 아기를 낳아 기르는 '번식자'들이 있는데, 주인공의 직업이 그 번식자들을 찾아내어 아기는 죽이고 부모는 체포하는 공무원임 주인공의 여친은 예술가임. 조수미 같은 세계적 오페라 가수임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갈채를 받자 감사하다고, 나 이 파트만 이십년 동안 연습한거라는 말을 함.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하니 스킬을 갈고 ..

2021.08.11

up

가로쥐 담당 선생님이 이번 약을 주시며 어쨌든 끝은 올 거에요. 라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안다고 그랬다. 약도 한달치 지어올까 하다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보름치 용량만 받아옴 이제 막 슬프지는 않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울지도 않는다. 쓸 데 없으니까. 전에 인스타에서 기르던 쥐를 떠나보낸 주인의 포스팅을 봤는데 쥐 죽고 나서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즐거워 보이길래 아니 저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가능한 거 같다. 왜냐면 그 사람은 쥐에게 정말 잘 대해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후회나 미련이 적어 심리적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솔직히 그 정도로 잘 해주진 못한 거 같아서 아마 후폭풍이 좀 있을 것 같다. 그 고통을 최대한 약화시키기 ..

2021.08.04

순대국은 왜 과소평가 되었나

순대국을 먹으러 갔다. 날이 더워 매운게 먹고 싶었다. 주인 아저씨에게 얼큰 순대국 얼마나 맵냐고 물으니 매운 거 먹는 사람 기준이라길래 그럼 걍 보통으로 주세요 하자 아 근데 못먹을 정도는 아니고 라면 먹으면 먹을 수 있어요.. 라며 테이블 앞을 서성이셨다. 아무래도 나에게 얼큰 순대국을 먹이고 싶어하시는 눈치길래 한 번 시켜봄 순대국을 기다리며 순대국집에 올때마다 하는 생각을 했다. 순대국은 훌륭한 음식이다. 맛있고 영양학적 밸러스도 좋으며 부추와 양파, 고추 등의 야채는 더 달라면 더 준다. 심지어 들깨로 맨든 귀한 가루는 원하는 만큼 맘껏 퍼먹으라고 테이블 마다 놓여있다. 해방 전 까지만 해도 귀한 음식으로 쳐주던 순대이다. 개념녀 테스트 따위에 남용될만한 음식이 아니다 이 말이다..! 반면 순대..

2021.06.29

약해진 가로쥐와 예뻐진 세로쥐

며칠 전 가로쥐가 다시 한번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병석에서 일어난지 8일 만의 일이다. 저번 병원 방문때 스트레스로 포르피린 마구 뿜던 게 기억나 이번엔 그나마 덜 먼 이앤박 동물병원으로 갔다. 고슴도치와 햄스터를 주로 보신다 하고 래트는 처음 진료하시는듯 했는데 뭐가 크게 다르냐니 얘들은 힘이 정말 세다고.. 핸들링이 어느정도 되냐, 무냐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세로가 아닌 유순한 가로쥐가 아파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로쥐는 성질을 못이겨 졸도하거나 피를 볼 듯 이번엔 초음파를 찍었는데 지난번 병원에서 왜 오늘은 엑스레이만 찍자고 하고 돌려보냈는지, 왜 처치실로 데리고 들어가 촬영 과정을 보여주지 않은건지 이유를 알았다. 뒷덜미를 있는 힘껏 잡아당겨 보정하는데 (피부를 얇..

2021.05.14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대중의 속성

초딩때 학교에서 BCG 단체접종을 실시함 접종 며칠 전 부터 애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BCG가 불주사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에 불로 달군 주사바늘을 찔러넣는 것이라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타들어간 접종부위엔 피고름이 흐르게 된다며 다들 패닉했음 집에가서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엄마는 픽 웃으며 지금이 뭔 전후시대도 아니고 주사바늘을 불로 소독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며 걍 일회용 주사기 쓸거라고 함 듣고보니 맞는 말이길래 담날 학교가서 애들에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해줌. 결론은? 씨알도 안먹혔음 주사놓는 사람 들어올때까지 다들 한맘 한뜻으로 불주사론을 굳게 지지하며 울부짖음 나는 그날 대중의 속성에 대해 깨달았음. 파리대왕 안경맨의 울분에 공감함 설리는 악플땜에 자살한거..

202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