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연히 조폭의 핸드폰 갤러리를 보게 된 적이 있다.
셀피와 개 사진, 여자친구, 동료들과 도박을 하거나 놀고 있는 사진이 잔뜩 있었다.
우와
환상적인 피사체들이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들이라 카메라 앞에서 저 정도로 자연스러워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아기나 문명과 동떨어진 원주민의 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동물적 바이브가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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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시골 버스를 탔을 때 근육질 몸매에 어떻게 봐도 감옥에서 한 것 같은
조잡한 문신을 한 중년 남자를 목격한 적이 있다. 풍기는 느낌이 일반인들과 너무 달라서 한참을 훔쳐봤다.
왜 버스를 탔지, 차가 고장이라도 난 걸까 생각하다 너무 오래 쳐다보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아 눈을 돌렸다.
개들은 개장수를 보면 오줌을 지린다는데 사람도 사람 잡는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오는 게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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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우를 웹에 검색하면 깡패 사진을 찍는 남자, 야쿠자를 찍는 작가라는 타이틀의 결과가 주루룩 등장한다.
그가 다루는 피사체는 주로 음지의 인물들이다. 야쿠자, 노숙자, 캬바레 직원 등
그리고 그의 시선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자리한다. 모두가 친구같고 애인같고 식구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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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그늘에 자리하는 날 것의 사회는 문명인들의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얼마나 많은 영화가 범죄자들을 다루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일상에서 들여다 보기 힘든 희귀한 풍경이라서도 있겠지만
그들의 삶이 사회의 어떤 부정성, 그러니까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누군가는 필요로 하기까지 하는 어두운 면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어떤 종류의 진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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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스페이스앤트에서 서울펑쓰 사진전을 할 때 양승우 자서전을 읽었다.
양승우가 전라도 깡촌에서 소년기를 보내던 때 동네 형이 사고를 치고 도피행각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형의 애인이던 누나는 제발 자수하라, 내가 옥바라지 잘 할게, 설득했지만 형은 거부했고
결국 누나가 경찰에 신고를 해 형은 징역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누나가 면회를 갈 때마다 형은 나가면 니X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고
출소 당일 형은 온 동네 동생들을 30명 정도 집합시키더니 누나의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양승우도 그 동생 중 하나였는데, 밖에 서 있으니 집안에서 병 깨지는 소리와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들어가 보니 누나의 두 눈이 담뱃불로 지져져 있었다고
그리고 그 누나는 양승우가 경찰이랑 실랑이 중 시궁창에 숨어있다 나왔을 때 자기 집에서 씻게 해주고 라면도 끓여준 누나였다고 한다.
이후 양승우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사진 하다가 10년 뒤에 고향에 돌아가니 그 누나가 술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술집 앞에서 떠들고 있었는데
누나가 눈이 머니까 귀가 잘 들리게 됐는지 풍뎅이(양승우의 별명) 왔나~ 하며 나오길래
양승우가
' 누나 눈이 안 보여서 어떡해 '
하니까 누나가
' 내가 사랑 한 번 찐하게 했지 '
라고 대답했다는데
여기서 좀 환장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책을 덮었다.
누나의 눈을 멀게 한 형은 저수지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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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우는 음지로 들어가 그 세계에 자리한 사람들을 찍는다.
프레임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는 그 자신에게서도 비슷한 냄새가 풍긴다.
전달하고자 하는 거창한 메시지는 없다고 하지만 사진을 보다보면 우리도 사람이오 라는 외침이 들려오는 듯 하다.
맞는 사람을 연민하는 건 쉽다.
때리는 사람을 연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때리는 사람을 연민하려면 때리는 사람의 고통을 엿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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